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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O | |
명칭 | 3DO 인터랙티브 멀티플레이어 |
영어 | 3DO Interactive Multiplayer |
통칭 | 3DO, 삼돌이 |
세대 | 5세대 거치형 |
개발사 | 3DO |
발매 | 1993년 10월 4일 |
매체 | CD-ROM |
저장매체 | 내장메모리(SRAM 32KB) 외장 메모리 유닛(PROM 256KB) |
CPU | ARM60 프로세서(12.5MHz) |
메인 메모리 | 2MB |
비디오 메모리 | 1MB |
그래픽칩 | 3DO CLIO |
해상도 | 320x240, 640x480(인터폴레이션) |
색상 | 24비트 컬러(1670만 색), 16비트 컬러(3, 2000색) |
화면 출력 | RF케이블, 컴포지트, RGB케이블, S-VIDEO |
사운드칩 | 20bit 커스텀 DSP |
음원 | PCM, ADPCM |
음원 출력 | 16bit 2채널, 돌비 서라운드 지원 |
매체 스펙 | 2배속 CD-ROM |
전원 | 자체전원 (100V 60Hz/220V 60Hz) |
컨트롤러 | 전용포트 1개 |
확장슬롯 | 전용 확장슬롯 2개 |

3DO 인터랙티브 멀티플레이어, 통칭 3DO(쓰리디오)는 3DO 사에서 설계한 5세대 거치형 게임기로, 1993년 10월 4일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매되었다. 참고로 3DO의 이름은 ‘3D’ 즉 3차원이라는 의미와 오디오(Audio), 비디오(Video) 등의 멀티미디어의 마지막 공통문자를 따서 3DO가 되었다고 한다.
단순한 게임기로서가 아닌 게임기능을 포함한 멀티미디어 플레이어로서 기획된 기기로, 비교를 하자면 게임기 제조사, 즉 플랫폼 홀더가 플랫폼을 독점하는 구조가 아닌 비디오 플레이어나 CD플레이어처럼 규격을 정해서 다양한 업체가 이에대한 라이센스를 획득해서 독자적으로 규격품을 생산, 경쟁하면서 지속발전 해나가는 형태의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그 때문에 3DO 사는 독자적으로 기기를 제조, 판매하지는 않고 설계만을 담당하고 실 제조는 마쯔시타(현 파나소닉), 금성전자(현 LG) 등의 회사들이 맡았다.
기획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모든 실패한 미디어 플레이어의 실패 수순을 그대로 밟아서, 비싼 기기 가격과 컨텐츠 부족으로 초기 시장진입에서 큰 반향을 얻지 못했고 경쟁기종인 세가새턴(Sega Saturn, セガサターン)과 플레이스테이션1의 발매 후에 말그대로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경쟁기종에게 밀리기 시작하면서 후속기종인 ‘M2’를 확장팩 형태로 발매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해당 기획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하고 엎어져 사라지게 되었다.
1996년에는 3DO사가 공식적으로 사업 철회를 선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기기가 되었다.
1. 상세 ✎ ⊖
3DO를 만든 3DO사는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 EA)의 100% 출자로 만들어진 회사였다. 당시에도 수많은 게임과 특히 스포츠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한 일렉트로닉 아츠는 PC와 게임기 시장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PC와 병행개발을 하던 EA는 급속도로 커져가는 게임기 시장에도 참여는 하고 있었으나 플랫폼홀더가 요구하는 막대한 라이센스비용을 탐탁치 않게 여겼기에 좀 더 범용적이고 오픈된 게임 플랫폼을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3DO의 규격은 상당히 PC와 흡사한 규격화된 포멀한 구조를 가지고 설계되었으며, 앞서 설명했듯 기본적으로 3DO사에서 설계한 시스템을 비디오 플레이어처럼 라이센스를 받아서 생산해 판매하도록 기획되었다. 때문에 단독 업체가 설계, 생산, 판매를 일원화하고 동시에 게임 개발사의 서포트까지 함께하던 전세대까지의 타 게임기 시스템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3DO사를 기준으로 보자면, 상당히 중간적인 입장으로 플랫폼 홀더로서의 입장에 서 있기는 하지만 닌텐도 등의 독점으로 플랫폼을 관리하는 회사에 비해서 기기 라이센스 비용도 소프트 라이센스 비용도 파격적으로 낮은 비용을 부과했다고 한다. 특히 소프트쪽의 경우 수십 퍼센트 단위의 수수료를 떼어가던 과거의 플랫폼들과 달리 게임 한장당 겨우 3달러라는 파격적으로 낮은 로얄티를 부과했다고 한다.
1990년에 3DO사가 설립된 이후 1992년까지 설계와 OS등 기반 구축과정이 이뤄졌고, 마쯔시타(파나소닉)나 금성전자(현 LG) 등의 하드웨어 업체들이 3DO 컨소시엄에 참여해 실제 설계를 개선하는 과정을 거쳐 1993년 10월 4일, 미국에서 마쯔시타의 3DO REAL FZ-1을 시작으로 판매가 개시되었다. 일본에서는 이듬해인 1994년 3월 20일 발매되었고, 한국은 금성전자에서 만든 3DO 얼라이브가 1994년 10월 발매함으로서 3DO가 전 세계에서 세번째로 발매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화려했던 이상과 달리 3DO는 CD-i와 메가시디 (MEGA-CD, メガCD)를 뒤섞어 발전시킨 듯한 어정쩡한 스펙과 지나치게 높은 기기 가격, 부족한 소프트 라인업 등으로 인해 발매 직후에 조차 별로 반짝이지 못한채로(1) 지지부진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1994년 후반에 일본에서 판매가 개시될 세가새턴(Sega Saturn, セガサターン)과 플레이스테이션1과의 경쟁을 위해 마쯔시타는 염가판에 해당하는 3DO REAL FZ-10를 발표했고, 비슷한 시기에 산요에서도 3DO TRY를 선보였으나, 기본적인 스펙에 변화를 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시장에서 밀려나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때문에 3DO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삼성의 경우에는 기기 디자인까지는 완성되었으나 결국 기기 발매를 포기하게 됨)
1994년 말 경쟁 기종들이 시장에 출시된 후, 승승장구를 하며 팔려나가면서 시장에서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사향길을 걷게되었다. 그나마 일본에서 1994년 말에 발매된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2X가 체면치례를 도왔고, 1995년 2월 사무라이 쇼다운, 1995년 4월 워프의 D의 식탁과, 코나미(KONAMI)에서 코지마 히데오가 직접 이식한 폴리스 노츠의 파일럿 디스크(본편은 9월) 등이 발매되면서 약간의 이슈가 되긴 했으나 경쟁 기종에서는 훨씬 커다란 이슈 타이틀들이 쏟아지면서 그야말로 묻혀버렸다.
근본적인 성능 부족에 대해서는 3DO 컨소시엄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M2(가칭)‘라는 확장형 장비를 이용해 3DO를 강화시키는 프로젝트를 발족하게 된다. 이는 PC엔진에 CD-ROM과 슈퍼카드를 애드온해서 강화한 것과 비슷한 수순의 프로젝트였으나, 문제는 이 발표를 통해 3DO는 사실상 ‘버려진 기계’취급을 받으며 더더욱 외면당하는 계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1996년 초에는 마쯔시타가 본격적으로 3DO를 게임기로서 밀어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M2에대한 권리를 3DO사로부터 인수하고 ‘파나소닉 엔터테인먼트’를 설립, 3DO기기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등의 프로모션을 펼치면서 M2를 차세대기로서 본격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3DO 사는 3DO에대한 모든 권리를 넘기고 1996년 사업 포기를 선언, 게임 유통 등으로 사업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1997년에는 마쯔시타와 LG전자(구 금성전자)가 협력해 M2에대한 계획이 어느정도 결실을 거둬 M2 기기에대한 기본 설계가 완료되었으나, 애시당초 런칭부터 압도적이었던 미국 시장 뿐만 아니라 일본 시장에서조차 세가새턴을 제치고 승세로 돌아선 플레이스테이션1의 기세를 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 1997년 6월 마쯔시타는 게임기 사업 포기를 선언하고 백기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때문에 3DO의 규격은 상당히 PC와 흡사한 규격화된 포멀한 구조를 가지고 설계되었으며, 앞서 설명했듯 기본적으로 3DO사에서 설계한 시스템을 비디오 플레이어처럼 라이센스를 받아서 생산해 판매하도록 기획되었다. 때문에 단독 업체가 설계, 생산, 판매를 일원화하고 동시에 게임 개발사의 서포트까지 함께하던 전세대까지의 타 게임기 시스템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3DO사를 기준으로 보자면, 상당히 중간적인 입장으로 플랫폼 홀더로서의 입장에 서 있기는 하지만 닌텐도 등의 독점으로 플랫폼을 관리하는 회사에 비해서 기기 라이센스 비용도 소프트 라이센스 비용도 파격적으로 낮은 비용을 부과했다고 한다. 특히 소프트쪽의 경우 수십 퍼센트 단위의 수수료를 떼어가던 과거의 플랫폼들과 달리 게임 한장당 겨우 3달러라는 파격적으로 낮은 로얄티를 부과했다고 한다.
1990년에 3DO사가 설립된 이후 1992년까지 설계와 OS등 기반 구축과정이 이뤄졌고, 마쯔시타(파나소닉)나 금성전자(현 LG) 등의 하드웨어 업체들이 3DO 컨소시엄에 참여해 실제 설계를 개선하는 과정을 거쳐 1993년 10월 4일, 미국에서 마쯔시타의 3DO REAL FZ-1을 시작으로 판매가 개시되었다. 일본에서는 이듬해인 1994년 3월 20일 발매되었고, 한국은 금성전자에서 만든 3DO 얼라이브가 1994년 10월 발매함으로서 3DO가 전 세계에서 세번째로 발매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화려했던 이상과 달리 3DO는 CD-i와 메가시디 (MEGA-CD, メガCD)를 뒤섞어 발전시킨 듯한 어정쩡한 스펙과 지나치게 높은 기기 가격, 부족한 소프트 라인업 등으로 인해 발매 직후에 조차 별로 반짝이지 못한채로(1) 지지부진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1994년 후반에 일본에서 판매가 개시될 세가새턴(Sega Saturn, セガサターン)과 플레이스테이션1과의 경쟁을 위해 마쯔시타는 염가판에 해당하는 3DO REAL FZ-10를 발표했고, 비슷한 시기에 산요에서도 3DO TRY를 선보였으나, 기본적인 스펙에 변화를 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시장에서 밀려나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때문에 3DO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삼성의 경우에는 기기 디자인까지는 완성되었으나 결국 기기 발매를 포기하게 됨)
1994년 말 경쟁 기종들이 시장에 출시된 후, 승승장구를 하며 팔려나가면서 시장에서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사향길을 걷게되었다. 그나마 일본에서 1994년 말에 발매된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2X가 체면치례를 도왔고, 1995년 2월 사무라이 쇼다운, 1995년 4월 워프의 D의 식탁과, 코나미(KONAMI)에서 코지마 히데오가 직접 이식한 폴리스 노츠의 파일럿 디스크(본편은 9월) 등이 발매되면서 약간의 이슈가 되긴 했으나 경쟁 기종에서는 훨씬 커다란 이슈 타이틀들이 쏟아지면서 그야말로 묻혀버렸다.
근본적인 성능 부족에 대해서는 3DO 컨소시엄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M2(가칭)‘라는 확장형 장비를 이용해 3DO를 강화시키는 프로젝트를 발족하게 된다. 이는 PC엔진에 CD-ROM과 슈퍼카드를 애드온해서 강화한 것과 비슷한 수순의 프로젝트였으나, 문제는 이 발표를 통해 3DO는 사실상 ‘버려진 기계’취급을 받으며 더더욱 외면당하는 계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1996년 초에는 마쯔시타가 본격적으로 3DO를 게임기로서 밀어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M2에대한 권리를 3DO사로부터 인수하고 ‘파나소닉 엔터테인먼트’를 설립, 3DO기기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등의 프로모션을 펼치면서 M2를 차세대기로서 본격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3DO 사는 3DO에대한 모든 권리를 넘기고 1996년 사업 포기를 선언, 게임 유통 등으로 사업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1997년에는 마쯔시타와 LG전자(구 금성전자)가 협력해 M2에대한 계획이 어느정도 결실을 거둬 M2 기기에대한 기본 설계가 완료되었으나, 애시당초 런칭부터 압도적이었던 미국 시장 뿐만 아니라 일본 시장에서조차 세가새턴을 제치고 승세로 돌아선 플레이스테이션1의 기세를 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 1997년 6월 마쯔시타는 게임기 사업 포기를 선언하고 백기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2. 성능 이슈 ✎ ⊖
당시 3DO 발매전의 광고를 일본 잡지 등을 통해 본 사람이라면 기억하겠지만, 3DO는 발매 전에는 ‘뛰어난 성능’을 메리트로 크게 홍보를 했다. 일본쪽의 새턴, 플스에 비해 거의 1년 먼저 나온 탓도 있어서 재규어와 함께 크게 성능 경쟁을 하며 시장에 나온 기기였으나, 이 두 기종의 스펙은 홍보 내용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즉 전세대의 시스템을 발전시킨 형태의 2D게임기로 처음부터 만들어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스펙이긴 하다. 즉 시스템 개선을 하기 전의 세가새턴과 경쟁을 할법한 방향성의 기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전혀 이해 못할 스펙은 아니긴하다. 전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력한 2D처리 기능과 당시 기준으로 강력한 성능의 범용 ARM 프로세서의 탑재로 인해 개발이 용이해서, 소프트웨어적으로 동영상 디코더인 시네팩 등을 사용하는데도 아무 지장이 없었다. 또한 세가새턴과 달리 ADPCM 등의 음원도 밸런스 좋게 갖춰져 있어 크리티컬한 개발 이슈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 탓에 같은 시네팩을 사용한 초창기 세가새턴에 비해서 동영상 화질이 훨씬 좋다)
그러나 시장의 흐름은 버추어 레이싱(1992), 버추어 파이터(1993) 등을 기점으로 3D그래픽으로 급속도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세가조차 이 기조에 대응하기 위해서 개발하던 ‘기가드라이브’ 기획을 엎어버리고 급하게 새로이 세가새턴을 디자인해야 했을 정도였다. 32비트로 넘어가던 이 시기에는 3D그래픽 자체가 이슈가 되어버려 이를 얼마나 잘 지원하느냐가 그야말로 관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이 시점에서 기기가 이미 다 완성되어 발매된 3DO와 재규어는 이에 대응하는 것이 애시당초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전세대에 세가, 닌텐도와 나란히 어께를 겨누던 NEC HE에서 내놓은 PC-FX또한 마찬가지였다. 세가와 소니, 특히 재빨리 실리콘 그래픽스의 칩셋을 도입한 소니쪽의 빠른 판단이 승패를 갈랐다고 할 수 있겠다.
3DO의 경우 기본적으로 3D 그래픽 가속 기능은 없으며, 소프트웨어적으로 3D그래픽을 처리하는 것은 가능했으나, 애시당초에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설계한 기계가 아니다보니 거기서 나오는 성능이야 뻔한 수준이었다. 즉 상대 기종인 플레이스테이션1의 경우에는 아예 하드웨어적으로 3D그래픽 처리를 위한 준비가 철저히 되어있었으므로 애시당초 상대가 되지 못했고, 하드웨어적으로는 별다른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아케이드쪽에서 잔뼈가 굵은 세가의 경우엔 범용 프로세서인 SH-2를 두개나 장착해 이를 극복하기위한 준비를 했지만 이쪽은 아예 그럴 수 없었던 것. 그 탓에 3D그래픽 쪽은 둠 수준에서 약간 올라간 정도가 거의 한계선이었다.
때문에 3DO에는 타 5세대 거치형 게임기에 비해서 좀 더 영상을 이용한 FMV 게임이 주류가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이는 NEC의 PC-FX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느껴진다) 특히나 서양쪽 제작사가 중심이었던 3DO는 인터랙티브 무비 계열의 게임 뿐만 아니라 거의 조작이 필요하지 않은 영상물의 타이틀도 발매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메가시디보다 우수한 성능! 더 빠른 CD-ROM! 더 좋은 동영상 화질!’
즉 전세대의 시스템을 발전시킨 형태의 2D게임기로 처음부터 만들어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스펙이긴 하다. 즉 시스템 개선을 하기 전의 세가새턴과 경쟁을 할법한 방향성의 기기였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전혀 이해 못할 스펙은 아니긴하다. 전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력한 2D처리 기능과 당시 기준으로 강력한 성능의 범용 ARM 프로세서의 탑재로 인해 개발이 용이해서, 소프트웨어적으로 동영상 디코더인 시네팩 등을 사용하는데도 아무 지장이 없었다. 또한 세가새턴과 달리 ADPCM 등의 음원도 밸런스 좋게 갖춰져 있어 크리티컬한 개발 이슈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 탓에 같은 시네팩을 사용한 초창기 세가새턴에 비해서 동영상 화질이 훨씬 좋다)
그러나 시장의 흐름은 버추어 레이싱(1992), 버추어 파이터(1993) 등을 기점으로 3D그래픽으로 급속도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세가조차 이 기조에 대응하기 위해서 개발하던 ‘기가드라이브’ 기획을 엎어버리고 급하게 새로이 세가새턴을 디자인해야 했을 정도였다. 32비트로 넘어가던 이 시기에는 3D그래픽 자체가 이슈가 되어버려 이를 얼마나 잘 지원하느냐가 그야말로 관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이 시점에서 기기가 이미 다 완성되어 발매된 3DO와 재규어는 이에 대응하는 것이 애시당초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전세대에 세가, 닌텐도와 나란히 어께를 겨누던 NEC HE에서 내놓은 PC-FX또한 마찬가지였다. 세가와 소니, 특히 재빨리 실리콘 그래픽스의 칩셋을 도입한 소니쪽의 빠른 판단이 승패를 갈랐다고 할 수 있겠다.
3DO의 경우 기본적으로 3D 그래픽 가속 기능은 없으며, 소프트웨어적으로 3D그래픽을 처리하는 것은 가능했으나, 애시당초에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설계한 기계가 아니다보니 거기서 나오는 성능이야 뻔한 수준이었다. 즉 상대 기종인 플레이스테이션1의 경우에는 아예 하드웨어적으로 3D그래픽 처리를 위한 준비가 철저히 되어있었으므로 애시당초 상대가 되지 못했고, 하드웨어적으로는 별다른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아케이드쪽에서 잔뼈가 굵은 세가의 경우엔 범용 프로세서인 SH-2를 두개나 장착해 이를 극복하기위한 준비를 했지만 이쪽은 아예 그럴 수 없었던 것. 그 탓에 3D그래픽 쪽은 둠 수준에서 약간 올라간 정도가 거의 한계선이었다.
때문에 3DO에는 타 5세대 거치형 게임기에 비해서 좀 더 영상을 이용한 FMV 게임이 주류가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이는 NEC의 PC-FX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느껴진다) 특히나 서양쪽 제작사가 중심이었던 3DO는 인터랙티브 무비 계열의 게임 뿐만 아니라 거의 조작이 필요하지 않은 영상물의 타이틀도 발매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3. 개발편의성 ✎ ⊖
어쨌거나 3DO는 성능 면에서 보자면, 3D 기능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보편적인 기기였다. 무엇보다 PC게임 시장의 개발사였던 EA의 자회사답게, 3DO사가 기획한 스펙이나 하드웨어 구성은 여러면에서 전세대까지의 게임기들과는 차별되는, 어떤의미에서는 PC에 가까운 형태로 하드웨어가 구성되어있었다.
현재로서는 널리 사용되는 프로세서인 ARM 프로세서에 기반한 ARM60 프로세서와 그래픽 가속기능을 갖춘 칩셋 CLIO와 MADAM, 사운드 처리를 위한 DSP로 딱 떨어지는 하드웨어 구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칩들은 ‘규격’만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하드웨어 제조사가 직접 생산해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32비트 OS를 제공해 PC와 흡사하게 개발을 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개발 편의성을 제공했다.
이러한 점은 PC기반의 게임 개발사들이 참여하는 장벽을 낮춰주는 주요한 요소로서 어필하는데 성공, 초기에 PC게임 개발사였던 크리스탈 다이나믹 등의 회사들이 참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로서는 널리 사용되는 프로세서인 ARM 프로세서에 기반한 ARM60 프로세서와 그래픽 가속기능을 갖춘 칩셋 CLIO와 MADAM, 사운드 처리를 위한 DSP로 딱 떨어지는 하드웨어 구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칩들은 ‘규격’만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하드웨어 제조사가 직접 생산해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32비트 OS를 제공해 PC와 흡사하게 개발을 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개발 편의성을 제공했다.
이러한 점은 PC기반의 게임 개발사들이 참여하는 장벽을 낮춰주는 주요한 요소로서 어필하는데 성공, 초기에 PC게임 개발사였던 크리스탈 다이나믹 등의 회사들이 참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4. 데이지체인 커넥터 ✎ ⊖
3DO는 전면에 배치된 컨트롤러 포트가 한개 뿐이다. 이는 PC엔진도 그랬지만, 기본 설계면에서는 이전의 방식과 완전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3DO의 컨트롤러는 데이지체인(Dazy chain, 담쟁이덩쿨) 방식으로 불리우는 구조로되어있어서, 컨트롤러에 케이블과 함께 케이블 커넥터 구멍을 가지고 있다. 즉 1P에 해당하는 컨트롤러를 기기와 연결하고, 2P에 해당하는 컨트롤러를 1P커넥터에 꼽는 식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IEEE1394 규격의 케이블을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형태로 보면 엑스박스 (XBOX)의 컨트롤러에 USB허브를 통해 확장포트를 제공하는 것이나, Wii의 기본 컨트롤러인 위모콘에 눈챠크를 연결하는 것과 흡사하다.
최대 8개의 컨트롤러를 담쟁이 덩쿨처럼 얽어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구조로 이뤄져있으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식임에 틀림 없었으나 3DO의 몰락과 함께 이 구조를 그대로 사용한 컨트롤러는 다시 채용되는 일이 없었다.
3DO의 컨트롤러는 데이지체인(Dazy chain, 담쟁이덩쿨) 방식으로 불리우는 구조로되어있어서, 컨트롤러에 케이블과 함께 케이블 커넥터 구멍을 가지고 있다. 즉 1P에 해당하는 컨트롤러를 기기와 연결하고, 2P에 해당하는 컨트롤러를 1P커넥터에 꼽는 식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IEEE1394 규격의 케이블을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형태로 보면 엑스박스 (XBOX)의 컨트롤러에 USB허브를 통해 확장포트를 제공하는 것이나, Wii의 기본 컨트롤러인 위모콘에 눈챠크를 연결하는 것과 흡사하다.
최대 8개의 컨트롤러를 담쟁이 덩쿨처럼 얽어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구조로 이뤄져있으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식임에 틀림 없었으나 3DO의 몰락과 함께 이 구조를 그대로 사용한 컨트롤러는 다시 채용되는 일이 없었다.
5. 실패요인 ✎ ⊖
5.1. 불협화음 ✎ ⊖
앞서 이야기했듯 3DO사는 기본적으로 게임기를 설계만하고 판매를 하지 않았다. 즉 일원화되어 관리되는 타사의 게임기들과 달리 이원화된 구조로 인한 불협화음이 게임기의 보급에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기기 발매 이전부터 문제가 불거진 것이 바로 ‘지나치게 비싼 기기 가격’이었다. 당시 미국 발매가가 699달러. 첫 CD-ROM을 도입한 PCE의 일체형 기기인 PC엔진 듀오 (PC-Engine DUO)의 초기가격을 상회하는 가격이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희망가를 7,9800엔을 내세웠다가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대한 반발에 부딪혀 5,4800엔으로 낮춰 발매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참고로 5세대 거치형 게임기의 승자인 플레이스테이션1은 1994년 발매된 일본은 4,9800엔, 1995년에 발매된 미국은 299달러(!)였다. 거품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해 일본에서의 가격은 그렇다쳐도 미국에서의 가격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닌텐도 이후의 ‘게임기’라는 개념이 ‘기성 부품을 저렴하게 대량 구매해서 설계한 단일 하드웨어를 싸게 판다’라는 개념 위에 ‘하드웨어에서 생긴 마이너스를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비용으로 벌충한다’라는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고가일 수 밖에 없는 하드웨어 가격을 낮춰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컨슈머 시장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3DO사와 기기 생산, 판매를 담당하는 회사가 이원화되어있는 상황에서 하드웨어 생산업체는 소프트웨어로 마이너스난 부분을 벌충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관리는 3DO사에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되었건 하드웨어 내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파격적으로 저렴한 기기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타파하려면 VHS 비디오 시스템처럼 ‘엄청난 판매량’으로 단가 하락을 기대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데, 이는 뒤에 설명할 소프트 부족으로 인한 시장 확대 실패로 일찌감치 좌절되고 말았다.
대표적으로 기기 발매 이전부터 문제가 불거진 것이 바로 ‘지나치게 비싼 기기 가격’이었다. 당시 미국 발매가가 699달러. 첫 CD-ROM을 도입한 PCE의 일체형 기기인 PC엔진 듀오 (PC-Engine DUO)의 초기가격을 상회하는 가격이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희망가를 7,9800엔을 내세웠다가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대한 반발에 부딪혀 5,4800엔으로 낮춰 발매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참고로 5세대 거치형 게임기의 승자인 플레이스테이션1은 1994년 발매된 일본은 4,9800엔, 1995년에 발매된 미국은 299달러(!)였다. 거품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해 일본에서의 가격은 그렇다쳐도 미국에서의 가격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닌텐도 이후의 ‘게임기’라는 개념이 ‘기성 부품을 저렴하게 대량 구매해서 설계한 단일 하드웨어를 싸게 판다’라는 개념 위에 ‘하드웨어에서 생긴 마이너스를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비용으로 벌충한다’라는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고가일 수 밖에 없는 하드웨어 가격을 낮춰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컨슈머 시장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3DO사와 기기 생산, 판매를 담당하는 회사가 이원화되어있는 상황에서 하드웨어 생산업체는 소프트웨어로 마이너스난 부분을 벌충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관리는 3DO사에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되었건 하드웨어 내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파격적으로 저렴한 기기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타파하려면 VHS 비디오 시스템처럼 ‘엄청난 판매량’으로 단가 하락을 기대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데, 이는 뒤에 설명할 소프트 부족으로 인한 시장 확대 실패로 일찌감치 좌절되고 말았다.
5.2. 소프트 부족 ✎ ⊖
3DO사는 기본적으로 EA의 자회사로서, 게임을 만들기 위한 회사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설계와 라이센스 관리를 위한 회사였고, 실제로 3DO의 메인 퍼스트파티는 EA였다.
물론 당시 EA는 매든 NFL이나 피파 축구 등의 초절정 인기 스포츠물을 가지고 있었으며, 울티마 시리즈를 만든 오리진을 인수하는 등 당시에 확실히 물이 오른 시기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EA는 PC용 게임 개발사였으며, 각 스튜디오들이 본사의 기조에 따라서 개발 방침을 쉽사리 바꿀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았다. 때문에 EA가 3DO에 참여해 많은 게임을 냈다고는 해도 당시까지의 퍼스트 파티, 즉 플랫폼 홀더가 내놓았던 시스템 셀러급의 소프트웨어는 사실상 선보이지 못했다.
때문에 3DO는 거의 서드파티의 소프트에 의존해 시스템을 팔아야 했는데, 초창기에는 크리스탈 다이나믹의 토탈 이클립스와 크래쉬 앤 번 등이 높은 완성도로 호평을 받았으나, 시스템 셀러라고 부를 만큼의 임팩트는 가지지 못했다.
EA가 중심이 되다보니 PC게임 개발사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나름 고무적인 경향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용의 굴이나 어나더 월드등의 전세대와 거의 차이 없는 게임들이 풀프라이스를 받으며 발매되는 등 태반의 게임들이 전세대의 메가시디 (MEGA-CD, メガCD)의 게임을 화려한 색으로 장식한 느낌으로 그쳤다는 점은 여러모로 매력이 없었다.
그나마 이듬해인 1994년 초에 피파 축구 인터내셔널 판이 높은 퀄리티로 나오고, 일본 런칭과 함께 일본의 게임들도 추가되어 소프트쪽은 약간 개선의 기미가 보이기도 했으나, 일본에서의 엄청나게 부진한 기기판매 성적과 함께 1994년 연말에 경쟁기종이랄 수 있는 세가새턴(Sega Saturn, セガサターン), 플레이스테이션1이 발매되면서 모든 이슈를 빼앗겨 초창기에 개발이 확정되어있었던 소프트 외의 신규 소프트가 씨가 말라버리는 놀라운 모습을 보이게 되어버렸다.
앞서 설명했듯 소프트가 팔리지 않으면 시장 확대가 되지 않으니, 당연히 서드파티의 하드웨어 제조사가 기기가격을 내리기도 어려워진다. 악순환의 시작이었고, 3DO는 그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당시 EA는 매든 NFL이나 피파 축구 등의 초절정 인기 스포츠물을 가지고 있었으며, 울티마 시리즈를 만든 오리진을 인수하는 등 당시에 확실히 물이 오른 시기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EA는 PC용 게임 개발사였으며, 각 스튜디오들이 본사의 기조에 따라서 개발 방침을 쉽사리 바꿀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았다. 때문에 EA가 3DO에 참여해 많은 게임을 냈다고는 해도 당시까지의 퍼스트 파티, 즉 플랫폼 홀더가 내놓았던 시스템 셀러급의 소프트웨어는 사실상 선보이지 못했다.
때문에 3DO는 거의 서드파티의 소프트에 의존해 시스템을 팔아야 했는데, 초창기에는 크리스탈 다이나믹의 토탈 이클립스와 크래쉬 앤 번 등이 높은 완성도로 호평을 받았으나, 시스템 셀러라고 부를 만큼의 임팩트는 가지지 못했다.
EA가 중심이 되다보니 PC게임 개발사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나름 고무적인 경향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용의 굴이나 어나더 월드등의 전세대와 거의 차이 없는 게임들이 풀프라이스를 받으며 발매되는 등 태반의 게임들이 전세대의 메가시디 (MEGA-CD, メガCD)의 게임을 화려한 색으로 장식한 느낌으로 그쳤다는 점은 여러모로 매력이 없었다.
그나마 이듬해인 1994년 초에 피파 축구 인터내셔널 판이 높은 퀄리티로 나오고, 일본 런칭과 함께 일본의 게임들도 추가되어 소프트쪽은 약간 개선의 기미가 보이기도 했으나, 일본에서의 엄청나게 부진한 기기판매 성적과 함께 1994년 연말에 경쟁기종이랄 수 있는 세가새턴(Sega Saturn, セガサターン), 플레이스테이션1이 발매되면서 모든 이슈를 빼앗겨 초창기에 개발이 확정되어있었던 소프트 외의 신규 소프트가 씨가 말라버리는 놀라운 모습을 보이게 되어버렸다.
앞서 설명했듯 소프트가 팔리지 않으면 시장 확대가 되지 않으니, 당연히 서드파티의 하드웨어 제조사가 기기가격을 내리기도 어려워진다. 악순환의 시작이었고, 3DO는 그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고 만 것이다.
(1) 미국의 잡지 Electronic Gaming Monthly에서 ‘1993년 최악의 게임기 런칭(Worst Console Launch of 1993)‘이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받았다.